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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리의 메모장/진중문고

플라톤 「국가」(1) 자기계발서로서의 <국가>

by 보미와 겨우리 2020. 4. 15.

자기계발서로서의 <국가>

by. 겨우리

일단, 나 자신에게 칭찬부터 해줘야겠다. 2월 4일에 입대한 뒤, 지금까지 10권의 책을 읽었다. 2달 반 동안 10권이니까…. 1달에 4권 정도인 셈이다. 짝짝짝!

 

#1 플라톤 <국가>에 얽힌 겨우리의 일화

  내게 생애 첫 A 학점을 받게 해준 게 <국가>였다. 서병훈 교수님의 수업에서 나는 <국가>의 등장인물인 아데이만토스와 글라우콘, 트리쉬마코스의 대화를 상상해 중간고사 답안지를 작성했다. 플라톤의 문체를 모방했고, 트리쉬마코스가 주장한 ‘강자의 정의’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반박에 대한 재반박을 담았던 것 같다(뭐라 썼는지 다시 읽을 수 있거나, 기억이 잘 나면 좋겠는데…). 몇몇 기억에 남는 부분은 있다. 나는 플라톤을 반박하려고 들면서, 민중이 어쩌고, 교육 기회의 평등이 어쩌고, 누구나 수호자 계급이 될 수 있다거나,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혼의 특성’ 같은 건 없으며, 사람은 계속해서 변화하기에, 금의 기질을 많이 갖고 있던 사람이 동의 기질을 많이 갖게 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썼었다. 플라톤의 문체를 모방해서 답안지를 문답법으로 적어냈다. ‘이건 A 아니면 F다.’ 생각하며 냈는데, A를 받아버린 것.

  입학 이후 노력해서 제출한 시험에 대해 받아본 교수님의 첫 인정이었다. 그걸 그냥 이렇게 받아들였으면 됐는데, 나는 부끄러웠다. 충분히 노력하지 않은 것 같았고, 인정받을 만큼 최선의 글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중간고사 채점 이후 교수님이 내 글이 가장 잘 쓴 글 중 하나라며 앞에 나와서 읽어보라 하셨을 때, 부끄러워서 숨어버리고 싶었다.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기억 속에서 당시의 시험을 지워버리고 싶었을 정도다. 이때의 나는 그냥 스스로가 싫었다. 졸업할 때가 돼서야 몇몇 동기들이 당시의 내가 썼던 글에 대해 기억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누구는 내 이야기를 듣고, 그걸 따라 해서 자신도 A를 받았다는 얘기를 알게 됐다. 나는 그제야 당시의 나를 인정했다.

  자신을 제대로 인정해주기 위해서, 확인이 필요했다. 당시의 나는 얼마나 노력했을까? 나는 플라톤을 제대로 이해한 게 맞을까? 당시의 내가 가졌던 문제의식은 무엇이었으며, 정당했을까? 그래서 군 생활의 목표로 독서를 세웠을 때, 가장 먼저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책이었다. 지난 2주 반 동안 일과와 훈련을 마치고 겨우겨우 졸음을 참아가며 읽었다. 2주 반이라니…. 오래도 걸렸다. 그렇게 다시 읽어본 플라톤은 내 기억과 일치하기도, 아니기도 했다. 1학년 때는 플라톤의 유머 감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게 분명하다. 재밌다! 중간중간 농담이 많이 섞여 있다. <국가>라는 딱딱한 제목과 책의 무서운 두께와는 어울리지 않게 말이다.

“소포클레스 선생, 그대의 성생활은 어떠하시오? 그대는 아직도 동침할 수 있나요?”

“예끼! 이 사람. 그런 말 말게, 나는 거기(성생활)에서 벗어난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몰라. 꼭 미쳐 날뛰는 포악한 주인에게서 벗어난 것 같다니까. … 노년이 되면 의심할 여지 없이 그런 감정들에서 해방되어 마음이 아주 편해지니까요. 욕망들이 한풀 꺾여 귀찮게 조르기를 멈추면 … 우리는 미쳐 날뛰는 수많은 주인에게서 해방된다는 말이지요. … 탓할 것은 한 가지뿐인데 그것은 노년이 아니라 성격이라오. … 사람 됨됨이가 반듯하고 자족할 줄 알면 노년도 가벼운 짐에 불과하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소크라테스 선생, 노년뿐 아니라 젊음도 견디기가 힘들다오.” (329 c)

  읽으면서 가장 많이 웃었던 곳이다. 재밌어서 메모해둔 부분인데, 책을 다 읽고 이 문장을 다시 읽으니, 뜬금없이 들어간 내용이 아니라 놀라웠다. 플라톤 인간관의 핵심은 지혜와 기개(용기), 욕망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상태가 최선이라 본다. 욕망은 필요한 욕망과 불필요한 욕망으로 나뉜다. 우리가 음식과 부식을 먹는 것은 필요한 욕망이다. 그러나 그 이상은 불필요하다. 성생활도 마찬가지. 성생활은 욕망 중 가장 강력한 것이라고 플라톤은 말하고 있다. 성생활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불필요한 욕망을 지혜와 기개의 부분이 제압해 혼의 주인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 상태에 이르지 못한다면 노년뿐 아니라 젊음도 견디기가 힘들다는 건, 우리 모두 각자의 경험을 통해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이다.

 

#2 자기계발서로서의 <국가>

  자기계발서의 대표주자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아프면 환자지, 무슨 청춘이냐?’는 말로 국민적 말장난 소재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계발서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장르 중 하나다. 플라톤의 <국가>는 장래가 촉망받는 그리스의 청년들이 철인으로 성장하는 데 동기부여를 할 목적으로 쓰인 것 같다. <국가>에서 수호자 계급이 수행해야 할 학습 과제는 초인적이다. 암기력이 뛰어난 건 기본에 학습 능력도 월등해야 하고, 기개 높고 성격이 밝은 데다가 용모가 단정해야 하고, 체력단련을 게을리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사상이 있었던 플라톤이기에, 플라톤이 세운 아카데미아의 학생으로 입학했다면? 문답법에 기반한 철학 공부, 수학, 기하학, 점성학, 음악, 거기에 체력단련을 ‘적은 수면’과 함께 하지 않았을까? 어지간한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는 게 아니었을 것이다.

  살다 보면 이런 고민이 들 때가 있다. 사실 자주 있는데, ‘그렇게까지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뭐지?’ 공부도, 체력단련도, 공동체에 이바지하며 정의로운 삶을 사는 것도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냥 좀 대충, 적당히 정의롭고 때로는 불의하기도 하면서, 적당히 살면 안 되나? 이런 학생들에게 플라톤은 단언한다. “최선의 정의로운 삶을 사는 것이 이롭다. 심지어 그게 가장 행복하다.”라고 말한다. 플라톤의 <국가>는 책에서 스스로 이야기하듯 논리적으로 완전무결하지 않다. 그러길 바라는 것 같지도 않다. (정체에 대한 논의가 길고 복잡해지려고 하면, 소크라테스는 그 이야기를 생략해버리기도 한다) 다만 책을 읽는 독자들이 철학을 사랑하고, 정의로운 삶을 살기를 바라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촘촘하게 돌다리를 놓아줬을 수가 없다.

뭔가 새로운 일을 도전하는 본인에게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다른 자기계발서를 찾아보기 전에, 플라톤의 <국가>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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