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불의, 어떻게 사는 게 더 이로운가?
by. 겨우리
#3 정의와 불의, 어떻게 사는 게 더 이로운가?
정의로운 사람과, 불의한 사람 중에 누가 더 행복할까? 플라톤이 극단적으로 제시하는 상황은 이렇다. “가장 불의한 사람은 너무나 불의한 나머지 사람들에게 정의롭다고 여겨지고, 가장 정의로운 사람은 너무나 정의로운 나머지 사람들에게 불의하다고 여겨진다. 그런데도 정의로운 삶이 더 이로울까?” 플라톤은 정의로운 삶이 이롭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가 <국가>의 전부다.
“우리는 혼이 불멸하며 어떤 악도 어떤 선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끊임없이 향상의 길을 나아가며 가능한 방법을 다해 지혜와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네….” (621 d)
“각 개인의 혼 안에는 더 나은 부분과 더 못한 부분이 있는데, 본성적으로 더 나은 부분이 더 못한 부분을 제어하면 그 사람은 ‘자신의 주인’이라고 불린다는 것 … 그러나 나쁜 양육과 나쁜 교제 탓에 소수인 더 나은 부분이 다수인 더 못한 부분에 의해 제압당하면 … 사람들은 그런 무질서한 상태에 있는 사람을 ‘자신의 노예’라고 부른다네." (431 a)
“혼 안에는 마시라고 명령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마시지 못하게 제지하며 마시라고 명령하는 부분을 지배하는 다른 부분도 있다네.” (439 c)
플라톤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영원불멸하는 혼이 있다. 혼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지혜와 기개, 욕망의 세 부분이다. 이중 지혜의 영역이 명령하고, 기개(용기)가 그를 보좌하며, 욕망이 그 둘에 복종하는 상태의 인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게 플라톤의 주장이며, 국가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살다 보면, 욕망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경우가 정말 많다. 당장 어제와 오늘의 나를 돌아봐도 그렇다. 롤토체스를 지우고 그 시간을 유용하게 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하루 만에 번복한다. 간식을 먹지 않고, 체력단련을 하겠다는 다짐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남은 건 프링글스와 초코팅촉 뿐이야…)
그러나 플라톤이 제시하는 ‘최선자 정체’의 수호자들은 체력단련에 철학 공부, 수학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사유재산을 소유하지 않고, 일체의 불필요한 욕망은 통제한 채 살아가야 한다. 왜? 플라톤은 대답한다.
“우리가 국가를 건설하는 목적은 한 집단을 특히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전체를 최대한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할 걸세.” (420 b~c)
아데이만토스는 수호자 계급이 불행하지 않냐 반문한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지만, 그들은 국가의 덕을 보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이 크고 멋진 저택과 가구, 금과 은으로 치장하고 있을 때 수호자들은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
“사사로이 외국 여행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네. 그들은 또 여자 친구들에게 선물을 할 수도 없고, 그 밖에 다른 일들, 이를테면 행복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돈을 쓰는 그런 일들에 돈을 쓸 수도 없네.” (420 a)
그러나 플라톤은 확고하다. 수호자들이 사유재산과 처자를 공유하는 등, 서로를 ‘자신의 일부’라고 여기기에 충분할 만큼 모든 것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수호자들은 서로의 고통과 기쁨을 나눈다. 이런 공유를 통한 결속이 수호자들을 행복하게 만들며 불행하게 만들만한 다툼과 시비에서 자유롭게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 수호자들이 경영하는 최선의 국가는 모든 동료 시민들이 하나로 결속하고 통일돼서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는 ‘개인을 닮은 국가’다. 몸의 한 부분의 고통을 전체로서 함께 느끼는 사회. 그로 인해 소송과 고소, 파쟁, 폭행이나 상해, 심각한 분쟁, 반란이나 반목, 그리고 그 외의 ‘사소한 어려움’에서 벗어난 수호자들은 결국 "올륌피아 경기의 우승자들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사유재산을 소유하지 않는 것’과 ‘처자 공유’인데, 그 둘만 사라지면 모든 반목이 사라지고, 수호자들이 같은 목표를 공유하게 되며, 자연스럽게 행복을 담보한다는 건 조금 순진하지 않나? 글라우콘이 소크라테스 선생을 여기에서 놔줬으면 안 됐는데….
나처럼 삐딱한 학생이 있을 걸 알았는지? 플라톤은 10권에서 영혼불멸설을 말하며, 정의로운 자들이 육신의 생명이 소멸한 뒤의 여정에서 보상받을 것이라고 한다. 읽다 보면 <신과 함께>가 떠오른다. 이렇게 끝난 건 정말 아쉽다. 글라우콘이 잘 했어야 했는데...
'겨우리의 메모장 > 진중문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이, 지니」by 정유정 (2) | 2020.06.16 |
---|---|
「포노사피엔스」서평 "포노 밀리터리와 함께 여는 육군의 미래" (0) | 2020.04.26 |
플라톤 「국가」(3) 플라톤에 대한 의혹과 보충 의견 (0) | 2020.04.15 |
플라톤 「국가」(1) 자기계발서로서의 <국가> (0) | 2020.04.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