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노 사피엔스」 서평
"포노 밀리터리"와 함께 여는 육군의 미래
17시 30분,
"(치직-) 행정반에서 전파드립니다. 현 시간부로 스마트폰, 가져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10분 뒤의 생활관, 말년 병장에서부터 지난주에 전입한 이등병까지 같은 자세로 하나의 물건만을 쳐다본다. "스마트폰".
2019년 4월 1일부로 바뀌게 된 병영생활 풍경에 대한 고민을 담아 <포노 사피엔스 :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를 읽어 내려갔다. '지혜가 있는 인간'이라는 의미의 호모 사피엔스에서 이제는 '스마트폰을 쓰는 지혜가 있는 인간'의 시대가 되었다는 선언적인 단어가 '포노 사피엔스'다. 최재붕 교수는 이미 현실로 다가온 포노 사피엔스의 시대를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새로운 시대에 앞서 나갈 것을 책의 전반에 걸쳐서 주장하고 있다.
2007년, 이미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는 하나의 프레젠테이션으로 세상을 뒤흔들었다. 1세대 아이폰이 잡스에 의해 발표되었을 당시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잠깐 지나갈 유행' 정도로 아이폰을 취급했다. 당시 세계 핸드폰 시장을 지배했던 노키아와 모토로라는 아이폰을 '게임기' 혹은 성능 좋은 'MP3 플레이어' 정도로 오판해 급격히 쇠락했고, 아이폰의 성공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던 삼성은 '갤럭시 S'를 발표해 현재는 애플과 함께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2010년을 기점으로 사람들의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2010년 이전의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조간신문을 읽고 아침 식사를 한 후 모두 일터와 학교로 나섰다. 이동수단 안에서 라디오를 듣고 집에 돌아오면 TV 앞에 가족들이 모여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30년 이상 굳어진 모습이다. 그러나 아이폰을 필두로 스마트폰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며, 일상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리고 바로 그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이 현재의 육군 용사들이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 태어나 현재 육군에 복무하고 있는 장병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자란 '포노 사피엔스' 1세대다.
이들 '포노 사피엔스' 1세대는 마치 손과 발의 감각기관을 사용하듯 스마트폰을 자유자재로 활용한다.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소통보다 온라인 공간에서의 소통에 더 익숙할 정도다. 깊은 정서적 유대와 공감이 오프라인에서만 가능하다는 기성세대의 편견을 비웃듯, 1세대는 학교에서 만난 친구보다 더 깊은 관계를 온라인에서 만난다.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트위터를 통해 만나거나, 게임에서 함께 던젼을 공략하며 호흡을 맞춘 '공격대원'들과 서로 없이 못 사는 관계를 맺기도 한다.
기존의 관성을 버리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세상이 모두 변화하고 있는데, 홀로 변화하지 않는 것만큼 더 위험한 게 있을까? 2008년까지만 하더라도 IT 브랜드 세계 최강의 기업은 '소니'였다. 워크맨 탄생 이후 30년, 소니의 독주를 막을 기업은 없을 것만 같았다. 당시 휴대폰 시장 점유율 40%를 기록했던 노키아도 소니를 넘어거진 못했고, 삼성은 소니 검색 빈도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그러나 포노 사피엔스의 시대에 뒤처진 소니는 그저 그런 기업 중 하나가 되었고, 삼성은 소니를 2배 이상 앞지르기 시작했다. 모토로라는 2011년 매각, 노키아는 2013년, 샤프, 도시바, 제이브이씨, 산요 등 거대한 IT 기업들이 대거 몰락했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달라진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면 뒤처지고, 잊혀진다. 반면 최재붕 교수는 좋은 사례로 '우버'와 'GM'을 사례로 든다. 2009년 등장한 우버는 전 세계에서 새로운 문명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기존 택시회사와 충돌하며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만, 우버의 비즈니스 모델은 돌이킬 수 없는 물결이 되었다. 이들의 성장으로 인해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택시회사가 아니라 오히려 자동차 회사들이다. 차량 공유 서비스와 공유 택시에 익숙해진 새로운 세대들이 더는 자동차를 구매하지 않는 것이다. GM은 우버의 경쟁 기업인 리프트와 함께 무인 택시를 개발하고 있다. 도요타 역시 "우리는 이제 모빌리티 컴퍼니"라는 선언과 함께 인공지능 자율주행 서비스를 선도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미 시대의 방향은 거스를 수 없을 정도로 '포노 사피엔스'에게 기울어져 있다. 최재붕 교수는 묻는다. '36억의 인류가 스마트폰 문명을 선택했고 앞으로도 계속 이 방향으로 발전할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당신의 선택은?' 이 질문에 답하려면 과거와는 다른 패러다임의 새로운 생각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스마트폰으로 인한 부작용에 대해서 민감하다. 그러나 이제 그 생각을 완전히 반대로 돌려야 한다. 이것은 국방에 관련한 문제가 아닌가? 가장 발전한 청동기 문화가 가장 낙후된 철기 문화에게 패배할 수밖에 없듯, 포노 사피엔스 시대에 스마트폰을 비롯한 최신 기술의 활용에 온갖 제약을 두는 문화를 가진 채로는 뒤쳐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전쟁에서 2등을 위한 자리는 없다.
다행히도 우리 육군은 세계적 변화의 흐름에 일부나마 함께하고 있다. 장병들에게 스마트폰 사용을 허용한 것, KCTC와 마일즈 훈련을 비롯한 과학화 훈련 시스템을 구축한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장병들의 스마트폰 사용은 시범 시행 초기부터 많은 논란을 빚었다. '그래도 군대인데'하는 막연한 거부감이 군 내외부에 존재했다. 그러나 스마트폰 사용이 허용된 지 1년 가까이 지났음에도 우려됐던 보안사고나 규정 및 지침 위반 사례는 없다고 봐도 무방한 정도다. 반면 외부와의 소통 여건이 크게 개선되어 장병들의 우울, 불안, 소외감이 현격히 저하되었다. 병-간부 간 소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스마트폰을 통해 자기 계발을 하는 장병들도 많다. 우려와는 달리 현실에서 스마트폰의 사용은 군 기강을 무너뜨리기보다는, 올바른 군 기강 확립에 도움을 주고 있다.
필자는 29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입영하게 됐다. 2011년부터 2019년까지, 수많은 친구와 후배들의 군 생활 이야기들을 들어왔다. 그들의 이야기에 비춰 지금의 군대를 보면 완전히 다른 곳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게 변화했다. 장기자랑으로 자대 전입을 시작하는 이등병은 더는 없다. 또 병사 간 경례가 사라졌고, 선임병의 빨래와 설거지를 모두 후임병이 도맡아 하던 악습 또한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스마트폰과 장병들의 비전투력 보존 및 강화를 위해 마련된 많은 제도적 장치들이 들어섰다. 지난 1년 동안 영내 폭행은 16%, 군무이탈은 11%, 성범죄는 32%가 줄어들었고, 병사들의 심리적 안정은 어느 때보다도 높다.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병사 상호 간의 신뢰관계가 무너진 군대가 실전에서 제 기능을 할 순 없다.
더 나아가야 한다. 현재 육군에서의 스마트폰과 IT 기술 활용은 이제 막 첫 발을 뗀 것에 불과하다. 병사들의 고립감 해소를 통한 심리적 안정과 병 상호 간, 병-지휘관 간의 신뢰관계 구축은 기본이다. 외국군의 사례를 모방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이미 미군과 이스라엘군을 비롯한 세계 여러 군사 강국들에서는 스마트폰을 전장에 활용하는 기술을 상용화했다. 미군은 NW(Nett Warrior), 이스라엘군은 Dominator 기술을 통해 전투 시 스마트폰을 사용해 병사와 간부들의 전장 상황 인식 능력을 크게 개선하는 성과를 냈다. 이미 중동의 여러 전장에서는 드론을 활용한 '무인' 전쟁이 현실로 다가왔다. 우리 군 역시도 스마트폰을 원격교육 및 과학화 훈련 등의 교육 훈련에 적용할 방안을 적극적으로 연구해야 할 것이다. 장병들의 스마트폰 활용 역시도 자율과 책임의 원칙에 따라 전면화하는 방안을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게 남은 군 생활 기간은 약 1년 5개월이다. '포노 밀리터리' 1세대의 슬기로운 육군 생활을 만들어갈 것이다. 지금 내가 만들어갈 병영문화가 스마트폰 사용 전면화 시대의 육군이 맞이할 새로운 미래를 현실로 당겨온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끼며 최재붕 교수의 <포노 사피엔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치직-) 행정반에서 전파드립니다. 현 시간부로 스마트폰, 반납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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