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에 대한 의혹과 보충 의견
by. 겨우리
#4 플라톤에 대한 의혹과 보충 의견들
사람은 살다 보면 변한다. 최선의 인간이, 최악의 인간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플라톤도 이 점에 대해 인지한 것이 분명하다. ‘최선자정체’가 ‘명예지상정체’로, 그리고 여러 과정을 거쳐 최악의 ‘참주제’로 변하는 과정을 여신의 입을 빌리기까지 해가며 8권과 9권에서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책의 전반에 걸쳐 정치체제와 개인을 대비시켜왔으니, ‘수호자 계급’의 인간 또한 명예 지상형 인간이 되거나, 혹은 그 이하의 존재로 추락할 수 있다는 게 된다. 혹은 반대의 경우도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최선의 정치체제를 규정하는 말은 ‘한 사람이 하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가장 적합한 일을 하는 것’이 본질에 더 가깝지 않을까? 살아가며 사람이 변해가는 대로 그때마다 적합한 일을 하는 게 최선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이 플라톤의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는 얘기는 아닐 것 같다. 플라톤의 이상 국가에서는 수호자의 교육 과정에서, 몇몇 장치들을 통해 수호자들을 걸러내는 과정을 거친다. 반대로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 적절한 절차를 거쳐 수호자 교육 과정에 진입하게 되는 게 올바르지 않을까?
‘지배하는 기술’을 ‘누구든지 배울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플라톤은, 동시에 그 교육을 일부의 선별된 인원만이 받을 수 있도록 제한한다. 왜지? 모두가 수호자 계급의 품성과 인격을 갖게 되는 게 최선의 국가 아닐까? 결국, 국가적으로 ‘지배할만한 사람’에게 ‘지배받을 것’을 결의한 민중들 역시도 ‘지배하는 수호자’ 만큼이나 절제력이 뛰어나야 한다. 플라톤이 말하듯이 민중이 ‘힘이 세고 사나운 짐승’ 이기 때문에 ‘진리(이데아)’를 볼 수 없는 존재라면 애초에 플라톤의 이상 국가는 형성될 수 없다. 수호자 계급과 노예 계급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수와 계산에 대해 교육, 훈련을 받으면 “누구라도” 이해력이 날카로워지는데, 왜 고작 “힘들다”는 이유로 가장 우수한 품성들에만 교육하는 걸까? 이해하기 힘들다.
이어서 고민되는 건, ‘지배하는 자’의 지위를 소수의 역량 있는 선별된 인원들이 독점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의견이다. 플라톤의 이상 국가에서 수호자 계급을 제외한 민중들은 지배 받으며, 각자의 적성에 맞는 ‘한 가지 일’을 한다. 수제 구두 장인이라면, 국가 운영에 대한 신경을 쓰지 않고 수제 구두를 만드는 한 가지 일에만 몰입한다. 플라톤에 따르면 한 사람의 기질 중 가장 탁월한 것을 활용해 그 기질을 최선으로 발휘하는 것이 그에게도, 공동체에도 최선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하려고 든다면, 최선의 인간이라도 본업에 들이는 역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으니 손해라는 설명이다. 그런 이유에서 플라톤의 이상 국가에서 민중들은 수호자들이 받는 교육을 받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플라톤이 이상 국가를 기왕 만들어보고자 했다면, 모든 사람을 수호자 계급의 인간형으로 만들 방도를 생각해내는 게 낫지 않았을까? 플라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더라도, 구두장이에게는 구두 만드는 기술 외에, 철학 하는 자질이 분명 있다. 다만, 상대적으로 적을 뿐. 작지만 분명 존재하는 자질을 플라톤이 활용하지 않았다는 건 사람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급(級)’이 정해져 있다는 차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의혹을 남긴다.
이와 비슷하게, ‘여성’을 다루는 관점에서도 한계가 보인다. 플라톤은 분류하기에 따라 ‘최초의 페미니스트’라고 보기도 한다. 분명 그 시대 그리스에서 여성 수호자가 가능하다는 주장은 급진적이다.
“우리는 여자들의 체력단련과 시가 교육과 특히 무기 소지나 승마와 관련하여 급진적인 변화를 도입했다고 익살꾼들에게 자꾸 놀림감이 되더라도 주눅 들어서는 안 되네.” (452 b~c)
“그렇다면 우리는 그렇게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에게, 국정 운영에서 어떤 기술 또는 업무와 관련하여 여자와 남자의 적성이 같지 않고 다른지 답변해주기를 요청하도록 하세.” (455 a)
“만약 어떤 기술 또는 업무와 관련하여 남성 또는 여성의 능력이 더 탁월하다면, 우리는 이 업무가 능력이 더 탁월한 성(性)에게 배정되어야 한다고 말할 걸세. 그러나 만약 이들 두 성 사이의 차이점이 여자를 아이를 낳고 남자는 아이를 배게 하는 것뿐이라면 … 여전히 우리 수호자들과 그의 아내들은 같은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네.” (454 e)
그러나 플라톤은 동시에
“비록 모든 업무에서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약하긴 하지만 말일세.” (455 e)
“그렇다면 여자도 남자도 똑같이 국가의 수호자가 될 자질을 타고났네. 여자는 더 약하고 남자는 더 강하다는 것 말고는.” (456 a)
“그들은 연약한 여성들인 만큼 그들에게는 남자들보다 더 가벼운 업무가 부여되어야 하네.” (457 a)
이외에도 ‘남성적인 것은 빼어나고, 여성적인 것은 열등하다’는 말을 통해 차별의식을 보인다. 사람을 어떤 기준(성과 기질 등)에 맞춰 태어날 때부터 급이 정해져 있다는 듯한 플라톤의 태도는 거슬린다. 플라톤은 나 같은 사람의 주장을 ‘평등주의자’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보충의견]
1) 수호자들의 교육에서 중요하게 제시되는 수학 공부(산수와 수, 평면 기하학, 입체 기하학, 천문학, 화성학)는 현대에 들어서는 단순히 수학의 영역이라기보단 자연과학 전반에 대한 학습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플라톤이 양자역학과 뇌과학 등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분명 수호자들에게 그 과목들을 가르치고자 했을 것이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서는 수호자 계급이 제아무리 몸이 날래고 힘이 세더라도 전쟁에는 별다른 도움이 안 된다. 만약 플라톤이 현대를 살아간다면 수호자 계급에 과학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2) 헬라스 인들 사이에서의 전쟁을 말하는 플라톤의 태도는 국제주의적 연대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처음부터 하나였고, 언젠가 하나가 될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경쟁과 전쟁에 임하게 된다면, 패전한 상대국의 사람들을 학살하거나, 노예로 만드는 것, 그리고 마을과 식량을 불태우는 등의 잔인한 행동을 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반대로 말하면, 당시엔 헬라스 국가들 사이에서 조차 그런 폭력이 행해졌다는 것. 세계 곳곳에서 국가 간 벌어지는 잔인무도한 행동에서 2,000년 전의 헬라스인들 보다 우리가 나아진 게 있는지 반문해보게 된다.
#5 이야기를 마치며
플라톤 스스로 이해받기 어려울 것이라 말한 세 가지 파도. 남녀 수호자들의 교육이론, 처자 공유, 철인통치론. 그 중에서서 ‘처자(妻子)’를 남성의 소유물로 대하는 관점은 구리다. 시가 교육에서 부정적인 내용을 싹 다 걷어내야 한다는 교육이론은 유치하게 보이기도 한다. 세상에 선의 이데아가 어디 있겠으며, 그걸 알 수 있는 사람과 평생 모를 사람이 정해져 있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러나 책을 읽어나갈수록 조금만 손을 보면, 플라톤이 말하는 국가가 ‘이상 국가’에 가까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전히 우리가 사는 세상의 ‘정체(政體)’는 최선이라기엔 많이 모자란다. 플라톤이 제시하는 다섯 가지 정체와 인간형 안에 보이는 우리네 국가의 모습과 내 모습이 겹쳐 보일 때면 소름마저 돋는다. 마지막으로, 내 뼈를 강하게 때리고 지나간 플라톤의 문장으로 마무리하겠다.
“그는 날마다 아무 쾌락이나 닥치는 대로 탐닉하며 세월을 보낼 것이네, 때로는 음주와 피리 연주에 도취하는가 하면, 다시 물만 마시며 살을 뺄 것이며, 때로는 체력단련에 몰두하는가 하면, 다시 게으름을 피우며 만사에 무관심해질 것이네. 때로는 철학에 몰입하는 척도 할 것이네. 그는 정치에도 자주 관여할 텐데, 그럴 때는 벌떡 일어나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할 것이네. 그리고 전사가 부러우면 그쪽으로 향하고, 사업가가 부러우면 그쪽으로 향할 것이네. 말하자면 그의 생활에는 아무런 질서도 필연성도 없네. 그는 이런 생활을 즐겁고 자유롭고 행복한 생활이라 부르면서 평생토록 그렇게 지낼 것이네." (561 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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