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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리의 메모장/드라마가 체질

이유 모르게 개운해지는 한국영화 <변산>

by 보미와 겨우리 2020. 9. 6.

<Sunset in My Hometown>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장겨울, 안치홍 선생이 나온다 하여 뒤늦게 알게 된 영화 <변산>은 시원하게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영화다. 영화의 주된 소재는 지긋지긋한 고향을 떠나 출세하고자 하는 주인공 학수의 이야기다. 여기까진 뻔할 수 있는데, 랩을 통해 주인공의 성장이 표현되는 음악영화라는 점에서 새롭다.

 학수(박정민 역)는 스물아홉, 대학을 중퇴하고 만년 무명래퍼다. 쇼미 더 머니 합격 목걸이 보단 개근상이 어울리는 그는 고시원에 산다. 편의점 알바를 비롯한 온갖 알바를 전전하며 생계를 겨우 유지하면서도 꿈을 잃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면, 우리 시대 청년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때문에 그가 자신의 콤플렉스들을 이겨내고 성장하는 과정 어딘가에서, 영화를 보는 우리들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내 고향은 폐항. 내 고향은 가난해서 보여줄 게 노을밖에 없네

 영화는 한글과 영문 제목에서처럼 "변산", "Hometown"을 주된 소재로 하고 있다. 학수에게 고향의 짙은 흔적은 인생 곳곳에서 발목 잡고 늘어진다. 랩을 하다가도 사투리가 튀어나오곤 하니, 그 흔적들은 태워서라도 지워버리고 싶은 것이다. 학수는 그런 고향을 떠난다. 말씨도 바꾸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고향을 서울이라 소개한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도, 8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산소도 외면하고 살아온 학수를 붙잡아 세운 건 선미(김고은 역)다.

언제까지 피해다닐 것이여. 니는 정면을 안 봐.

 <변산>에서 학수는 고개를 들고 자신의 발목을 내내 붙잡아온 것들과 제대로 맞짱을 뜨고 난 뒤 끝내 개운해진다. 그리고 쏟아내는 학수의 랩은 노래를 꼭 다시 찾아 듣고싶은 명곡이 됐다. 이 영화를 제대로 연기하기 위해 오롯이 1년을 연습했다는 배우 박정민의 피땀이 만들어낸 감동이기도 하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그 장면의 감동을 온전히 느낄 수 있기에, 이 영화는 꼭 챙겨 보자! 연기 구멍 하나도 없는 배우들의 명연기와 장겨울 선생의 반전 매력은 덤이다.

박정민 - 노을

 인생이 그렇다. 피하려고만 해서 피해지는 게 인생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신기하게도 한 번 피했다고 생각한 화살은 언제고 나를 쫓아와 급소에 꽂힌다.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곱씹다 보니, 나도 몰래 내가 외면하고 있던 것들을 다시 들춰보게 된다. 어느새 내 나이도 학수와 같은 스물아홉, 6년째 남들 보기에 허망할 수 있는 꿈을 꾸고 있다. 서른을 코앞에 두고 보니 무섭다. 내 발로 딛고 제대로 설 수 있을까, 오를 수 없는 나무를 너무 오래 쳐다만 보고 있는 건 아닌가, 애초에 요 나무가 맞나? 과거를 돌아볼 시간을 충분히 갖지 않은 채 닥치는 대로 살아왔는데, 마침 좋은 사람들과 함께 생각 정리하기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다행이다.

한 마디면 된다. 아따! 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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