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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리의 메모장/드라마가 체질

넷플릭스 <인간수업> 후기/분석 '평범함’에 대해 묻다

by 보미와 겨우리 2020. 5. 11.

겨우리

 

<인간수업>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얼리 어답터인 후배와 함께 봉준호 감독의 <옥자>를 볼 때까지만 해도 “넷플릭스가 뭐야?”라는 생각이었다. 영화 한 편씩 돈 내고 보면 될 것을 굳이 월마다 돈을 내는 게 이해가 안 됐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 보미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를 함께 보자고 해서 처음 가입하게 됐다. 처음에는 무료 한 달 기간 동안 '내사모남'을 보고 원래 보고 싶었던 영화 몇 편 정도만 더 보고 끊을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히스토리 채널에서 제작한 <바이킹스>에 푹 빠져버렸다. 그리고 그 한 달 동안 바이킹스를 볼 수 있는 채널을 따로 찾지 못해서 넷플릭스 생활이 시작됐다. 그 뒤 지인들의 추천과 인터넷 검색을 통해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 <나르코스>, <킹덤>, <너의 모든 것>과 같은 작품들을 알게 됐고, 현재까진 대만족이다! 이젠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새로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대하곤 한다.

 

 <인간수업>은 평소 같았으면 굳이 찾아보지 않았을 장르와 소재였음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니까..” 하며 관심 갖게 된 작품이다. 볼까 말까.. 하던 중에 영화/드라마 추천에 실패해본 적이 없는 코뿔소가 추천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역시! 이틀 만에 10편을 다 몰아서 봐버렸다. <인간수업>은 학교에선 성실한 모범생, 따분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는 주인공 ‘오지수(김동희)’가 하교 후엔 ‘조건만남’을 알선하는 성매매 브로커라는 파격적인 설정에서 시작된다. 오지수는 ‘삼촌’이라는 가명을 쓰면서, 이 실장이라 불리는 ‘왕철(최민수)’을 앞세워 포주 역할을 한다. 조건만남을 뛰는 여성들 중에는 2학년 중 제일 잘 나가는 여자 일진 ‘서민희(정다빈)’가 있었고, 미성년자 성매매라는 매우 민감한 소재와 함께 <인간수업>은 시작된다.

 

 간단히 평가하자면 전개가 시원시원하고, 배우들의 연기가 좋다. 최민식의 '왕철'은 보는 내내 "대박.."을 외치게 할 정도로 뛰어났고, <이태원클라쓰> 김동희가 연기한 '오지수'도 훌륭했다. 원래 이런 범죄/스릴러 물을 좋아하지 않다보니, 본 작품이 많지는 않아서 평가하기 애매하지만.. 내게는 충분히 흡입력 있는 이야기와 생각 없이 보면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개연성을 갖고 있다. 때문에 주변에도 여럿 추천했고, 다들 만족스럽게 시청했다. 아래는 <인간수업>을 보며 들었던 여러 생각들을 갈무리할 것이다. <인간수업>을 아직 안 봤다면, 보고 난 뒤에 읽기를 권장한다!

 

* 이하 스포주의 *

 

 

<인간수업>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남들처럼 학교 다니고, 졸업하면 취직하고, 그렇게 평범하게 살고 싶다구요!” (오지수)

 

 <인간수업>의 부제는 "틀린 답에 목숨을 걸었다"이다. <인간수업>에 나오는 핵심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틀린답에 목숨을 건다. 오지수, 서민희, 배규리, 왕철이 특히 그렇다. 네명의 핵심인물들은 악행을 저지른다. 실제로 어딘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게 밝혀진다면,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수 있을만큼 죄질이 나쁘다. 주인공이 바로 그 범죄자이다보니, <인간수업>은 범죄를 미화한다는 혐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전 편을 다 보고난 뒤에도 조금은 찝찝한 맛이 남는다. 이 부분은 마지막에 다시 정리해보고자 한다. 네 명의 핵심인물들은 심각한 악행을 저지르지만, 특별한 동기를 보여주지 않는다. '평범해지고 싶다'는 게 이들의 동기라고 제시된다.

 

 주인공 오지수의 인생은 도박 빚에 가산을 탕진한 아버지, 그런 아버지에게 질릴 대로 질려 떠난 어머니(오지수의 어머니가 시즌2의 주요 등장인물이 아닐까?!). 중학교 3학년 학생이 겪기엔 평범하지 않은 일들이었다. 오지수가 평범해지기 위해 필요한 건 돈이다. 학원비를 내고, 대학을 다닐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해서 '남들 처럼' 사는 게 오지수의 가장 큰 목표다. 학교에선 인싸 중의 인싸, 털털한 성격의 ‘배규리(박주현)’의 가정 역시 평범하지 않다. 작은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이끌고 있는 부모님은 강박적으로 배규리를 ‘관리’한다. 배규리는 심각하게 자살을 시도하거나, 부모님을 쏴 죽이는 상상에 빠질 정도로 심각한 지경이다. 우연히 오지수의 이중생활을 알게 된 배규리는, 오지수의 '사업'에 흥미를 갖는다. 그때부터 어떻게든 오지수와 동업하기 위해 매달린다.

 

 그러나 단순히 표면상으로 제시되는 오지수와 배규리의 케릭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그들은 정말 '평범한 삶'이 목표일까? 극중 묘사된 바에 따르면, 오지수는 왕철을 만나기 전부터 이미 포주 일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왕철과의 만남이 그의 삐뚫어진 면모의 시작이 아니라면, 그 시작은 어디부터일까? 아버지가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어머니가 그에 질려 중2 때 가출해서 홀로 살다가, '댕댕' 어플을 활용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는 포주가 된다는 게 납득하기 쉬운 설정은 아니다. 배규리의 경우도 그렇다.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오지수의 '사업'에 동참하고자 하는 배규리의 동기가 쉬이 납득되진 않는다. 아마도 이 두 부분에 대한 묘사가 더 세밀해질 경우에는 범죄를 미화한다는 혐의가 더 짙어질 것이기에 어쩔 수 없지 않았나 싶다.

 

 

<인간수업> 중, 오지수가 왕철과 처음 만나는 장면. 넷플릭스 제공

 

 

 퇴역군인(연령으로 보면 베트남전이지 않나 싶은데, 군복을 보면 이라크인 것 같기도 하고.. 아리송하다)인 왕철은 <인간극장> 시즌1에서 가장 중요한 '어른'으로 등장한다. 군생활중 갖게 된 PTSD로 인해 삶의 의미를 잃은 듯 노숙을 하던 왕철은 오지수(삼촌)가 부여한 '이 실장' 역할을 수행하며, 삶을 이어간다. 왕철은 서민희가 성매매 중 받은 폭력으로 인해 PTSD에 시달리자, "그거 PTSD라고 하는거야." 라며 이 바닥을 떠나라고 말한다. 그러나 서민희는 "이짓(성매매)이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만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단 듯 절박하게 매달린다. 자신의 의견을 단 한 번도 어필한 적 없었던 왕철은 딱 두 번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데, 그 중 한 번이 서민희가 일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삼촌(오지수)에게 말하는 부분이고, 또 한 번은 왕철이 죽기 직전, 오지수를 쳐다보며 "우리, 이제 다신 만나지 맙시다."라고 말하는 것. 아마도 왕철은 오지수가 삼촌임을 알아채고, 그를 지키기 위해 본인의 목숨을 건 듯 하다.

 

 <인간수업>의 모든 어른들 중 왕철만이 시청자(나...^ㅡ^;;)와 아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줬다. 담임선생 진우와 여청계 형사(빙썅..)의 존재는 우리 사회의 긍정적 역량을 대표하기 위해 그려진 케릭터 같다. 그러나 그들의 초인적 노력과 관심을 보여준다. 극 중 다른 선생들과 형사들은 완전히 관료적이라서 더욱 대비된다. 극 후반, 오지수가 진우에게 “선생님도 터져본 적 있어요?”라는 질문에 이어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고자 하기도, 서민희의 경우엔 여청계 형사의 끈질긴 설득에 넘어갈 뻔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매번 늦고, 아무것도 해결해내지 못했다. 한 번 더 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극 중 배규리에게는 서민희의 왕철, 오지수의 진우와 달리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어른이 등장하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인지 극 후반 왕철의 부상과 죽음을 중심으로 서민희와 오지수의 감정선이 고조될 때, 배규리 혼자 붕 떠있다. 홀로 감정선이 일치되지 않기 때문에, 오지수와 배규리의 관계가 틀어지고, 그로인해 파국으로 이어진다. <인간수업>은 이러저러한 평가를 제쳐두고 정말 킬링타임으로 최고의 드라마다.

 

 

 

<인간수업>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마찬가지로 보미가 추천해줬고, 넷플릭스를 통해서 접하게 된 한국 영화 『성실한 나라의 엘리스』는 『인간수업』에 대비된다. 성실한 나라의 엘리스에서 ‘수남(이정현)’은 『인간수업』의 아이들처럼 틀린 답에 목숨을 건 게 아니라, 옳은 답에 목숨을 걸었다. 말 그대로, 성실하고 우직하게 평범한 삶을 위해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것들을 모조리 해낸다. 그러나 그에게 찾아온 결말은? 오지수와 배규리가 맞이한 결말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씁쓸한 맛이 진하다. 수남은 정말정말 성실하게 삶을 이어가는데, 자꾸만 나락으로 떨어진다. 집을 사기 보단, 남편의 귀 수술을 하고 싶었고, 집을 사기 위해 9년을 성실히 일했으나 빚더미에 앉게 됐다. 남편은 자신 때문에 홀로 9년을 고생한 수남을 보고, 절망감에 자살을 택하지만, 죽지도 못하고 살아서 식물인간이 된다. 남편의 입원 비용이 감당이 안되는 수남은 때마침 찾아온 도시 재개발의 기회를 붙잡기 위해 뛰어든다. ‘평범’하고자 선택한 모든 선택들이 결국 수남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다. "미안해요. 그러니까... 내가 죽이는 거 이해해 주세요..."

 

 아픈 이들이 많은 세상이다. 평범하게 사는 것 이상의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수남처럼 ‘성실하게’ 살아야 하나? 아니면, 오지수처럼 ‘틀린답’에 목숨 걸어야 할까? 힌트가 되는 것은 수남의 대사와 인간수업, 진우의 대사에서 찾을 수도 있겠다. 수남은 남편이 손가락을 잃게 되자, “나 혼자 해결해야 해”라며 9년 동안 악착같이 돈을 긁어모아 집을 산다. (그마저도 1억 4천의 빚을 져서) 진우는 오지수와 배규리를 보며 “혼자서 끙끙 앓는 놈들”이라고 혀를 차다가, “내가 수습해주랴?”라며 손을 내민다. 결국 우리가 평범하게 살아갈 가능성은 연대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인간수업>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따뜻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연대가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에 대해 잘 보여준 『동백 꽃 필 무렵』 역시 연상된다. 평범하게 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미혼모. 동백이와 용식이,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서사가 오지수에게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우리들에겐 또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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